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04 대한민국 (문단 편집) ==== 1권 ==== 2003년, [[북한]] 국방위원장 [[김정일]]이 갑자기 암살당하자 권력계승을 두고 [[김정남(북한)|김정남]]과 [[김정철]]이 대립했지만 [[원산]]선 이남에 있던 북한군 10여개 군단이 쿠데타를 일으켜 [[평양]]을 점령, 두 사람을 구금했다. [[한국]]은 북한의 급변사태를 보고 전군에 비상령을 하달했지만 정권을 장악한 군단장들은 한국에 [[통일]]을 제의했다. 북한군 일부 지방군단이 쿠데타에 반발했지만 이미 북한군 주력부대 대다수가 쿠데타에 동참한 상황이라 이들의 반항은 순식간에 진압되고, 북한은 2004년 1월 29일 부로 한국에 흡수통일된다. 하지만 2003년부터 시작된 불경기에 휘청이던 한국 경제는 갑작스러운 통일 때문에 더더욱 곤란을 겪게 되고, 많은 국방비를 지출해야 되었기 때문에 국민의 부담은 더 늘었다. 정치는 북한 군단장과 남한 정치인들의 대립으로 혼란스럽고 서울로 몰려든 북한군 퇴역병들 때문에 밤마다 총성이 들릴 정도로 치안이 악화되었으며 지역감정 역시 악화되었다. 이러던 중 지진마저 시작되어 통일한국에서는 세기말적인 정서가 널리 퍼졌고 미래는 암울하기 짝이 없었다. 100년 전인 [[1904년]], 피폐해져만 가는 [[대한제국]]의 현실에 좌절하여 [[명성황후]]의 묘로 찾아가 눈물을 흘리던 [[고종(대한제국)|고종]]은 명성황후의 혼을 만나게 된다. 혼을 만난 것도 평범한 일은 아닌데 그녀는 자신과 선대왕들이 죄값을 치루는 조건으로 강한 나라인 대한민국 국민들이 온다고 주장한다. 물론 고종은 이를 믿지 않았다. 통일이 이뤄지고 얼마 뒤인 2004년, 원인불명의 대지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어느날 5.0리히터 규모의 대규모 지진이 하루동안 한반도 전체를 뒤흔드는 사건이 발생한다. 공포스러운 하룻밤이 지나가는 동안 다행히도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서서히 발견되는 이상한 징후들.[* 갑자기 [[덕수궁]]이 3배 이상 확장되고 대기 오염물질이 급격히 감소하는가 하면 영해 밖에 있던 배와 비행기가 모조리 사라지고 국외 통신과 위성통신 역시 모두 끊어저버렸다.] 확인 결과 1904년 당시 덕수궁 부지를 제외한 2004년의 한국은 통째로 1904년으로 이동한 것이었다.[* 경찰들은 덕수궁 밖으로 나온 고종 황제와 신하들을 보고 문화재를 불법으로 점거한 광대인 줄 알고 대치하나 [[전주 이씨]] 종친회 회장이 황제를 알아보고 절을 하면서 갈등이 해소되었다.] 이후 한국이 세계를 어떻게 바꿔 나가는가에 대해 기술한 소설이 바로 이 <1904 대한민국>이다. 상황을 파악한 대한민국 대통령은[* 대통령의 이름이 '노우현'인데, 본인이 광주 노씨라는 점을 고종 앞에서 밝히는 것을 보아 사실상 이름만 다른 [[노무현]]인 듯(...). 이때 고종 황제는 개국공신인 노숭 대감의 후예라며 크게 기뻐하였다.] 한국이 미래에서 타임슬립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군을 동원하여 외국인들의[* 만주나 [[청나라]] 등지에 나가있던 조선인 포함. 만주 쪽에서 조선인 1명이 저지선을 뚫고 억지로 들어가려고 하자 한국 군인들이 사살하는 장면도 나온다.] 입국을 엄금하고 국내에 체류하던 [[외국인 노동자]], 외국인 관광객, 한국에 거주하지만 귀화하지 않은 이들을 모조리 체포하여 격리수용소에 감금한다.[* 여기에는 주한 미국 대사 등 각국 공사관들도 포함되었다. [[주한미군]]은 한국이 통일된 이후 대부분 본토로 철수하고 몇몇 부대가 [[김해]]에서 철수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한국은 특전사를 보내 한국에 체류하던 주한미군 병사들을 모조리 죽여버린다.] 한국으로 관광 온 자위대원 이테와 CIA 요원 롭 등은 비밀리에 한국을 빠져나오는 데 성공하지만, 한국 정부는 [[국가정보원]] 요원들을 파견하여 국외로 탈출한 외국인들을 모조리 없애려고 한다. 그리고 개헌 없이 고종을 황제로 옹립하여 국가체제를 [[입헌군주제]]로 전환하고,[* 황제국이 되었지만 국호는 여전히 대한민국이다.] 석유, 식량 등 부족한 자원을 위해 일본과 만주 등지로 진출을 시도한다. 아직 [[대한제국]]이 [[대한민국]]으로 바뀐 것을 모르는 일본 제국은 제3함대를 진해만으로, [[뤼순]]에 있는 일본 제1, 2군과 본토에 있는 7개 사단을 [[한양]]으로 진격시킨다. 하지만 북상하는 제3함대는 [[하푼]] [[대함 미사일]]에 모조리 갈려나가고, 압록강에서 들어오는 일본군도 한국군의 압도적인 포병화력에 섬멸당한다. 일본 본토에서 7개 사단을 싣고 한국으로 오던 일본 수송함대 역시 [[F-4 팬텀 II|F-4]] 25대와 [[Su-25]] 25대에[* 러시아의 전투기인데, 흡수통일 후 북한의 것을 그대로 소유하게 된 모양이다.] 섬멸당하고, 한국 시민들은 국군의 승전에 들떠 "황제폐하 만세!"를 연호했다.[* 참고로 이 때는 고종이 대한민국 황제로 즉위하고, 대통령이 대한민국 수상으로 취임하는 날이었다. 이후 입헌군주제 헌법을 공개하는데, 황제의 역할을 규정한 내용인 1조부터 7조까지 [[일본국 헌법]]과 판박이다(...). [[일본국 헌법]] 참조.] 초전에서 장병 13만 명을 잃은 일본 제국은 뒤이어 고종이 보낸 최후통첩문을 받는다. 그 내용은 [[을미사변]]의 관련자를 한국으로 압송할 것, 국왕의 호칭을 [[천황]]에서 일왕으로 바꿀 것, 앞으로 파견할 한국 외무장관을 국빈으로 대우할 것, 전쟁배상금을 지불할 것, 한국으로 와서 자신 앞에 [[삼궤구고두례]]를 올릴 것이었다. 당연히 일본 제국은 전쟁을 준비하고, [[이노우에 가오루]]를 한국에 파견하여 [[을미사변]]에 연관된 친일 조선인을 송환하는 것과 외무장관을 귀빈으로 모시는 것[* 이노우에가 '귀빈'이라고 하자 고종이 '국빈'으로 모시라고 딴지를 건다.] 외에는 모조리 받아들일 수 없다는 [[메이지 덴노]]의 뜻을 전했다. 그러자 고종은 일본이 자신의 요구를 거부한 것으로 알겠다며 그 자리에서 [[선전포고]]한다. [[연합함대]]는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의 지휘 아래 본국에 있던 군함과 [[러일전쟁]]에 투입되었던 주력함을 모조리 소집해 한국과의 결전을 준비한다. 한편 [[뤼순]]에 고립되어 있던 [[러시아 제국군]]은 일본군이 갑자기 사라지자 의아해하면서도 조선을 손에 넣기 위해 남하하지만, 남하 도중 국군에게 갈린 일본군 잔해를 보면서 잠시 주춤하다가 3천 명을 선발대로 보내어 다시 진격한다. 그러나 계곡에서 일본군으로 위장한 국군의 압도적인 화력 앞에 7만 명이 전사하고 2만 명이 포로가 되는 대패를 겪고 물러난다. 한국 정부도 일본을 손에 넣기 위해 [[SR-71]] 블랙버드를[* 본래 미국 정찰기인데, 본래 북한군의 동향을 살피는 임무에 투입되었지만 미국이 한국의 반미감정을 달래기 위해 통일을 축하한다는 명목으로 무상으로 넘겨주었다.] 동원하여 일본을 정찰하고, [[민항기]]를 징발하며 흑우(黑雨) 작전에 투입될 공수부대원 3만 5천 명을 소집했다. 여기에는 황태자 이척 역시 신분을 숨기고 1명의 공수부대원으로써 훈련을 받고 있었다. 모두 모인 일본 [[연합함대]]는 [[쓰시마 섬]]에서 대기하다가 한국 해군을 격멸하고 진해만을 점령하여 [[대한해협]]의 [[제해권]]을 확보하라는 천황의 명령을 받고 북진한다. 한국 해군 역시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 [[광개토대왕급 구축함]], [[동해급 초계함]], [[참수리급 고속정]], [[장보고급 잠수함]] 등을 동원하여 일본 해군을 요격할 준비를 마쳤지만,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을 존경하는 해군참모총장 도일균 대장의 지시로 연합함대 기함 [[미카사]]와 연합함대 사령부는 [[UDT]]를 동원하여 모두 생포하기로 결정한다. 1904년 5월 30일, [[동해급 초계함]] 1척이 일본군 초계함을 격침하면서 전투가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고속정과 초계함대가 빠르게 돌진하여 연합함대 함렬 깊숙이 침입, 우월한 기동성과 [[아군 오사]]를 우려한 연합함대의 소극적인 포격 덕분에 일방적으로 연합함대를 농락한다. 연합함대가 공격을 위해 산개하자 고속정들은 일제히 공격하여 [[주세페 가리발디급 장갑순양함|가스가급 장갑순양함]] 가스가를 [[엑조세]]로 대파시켰다. 그때 UDT 대원들을 실은 [[링스]] 헬기가 전장에 도착하자 미카사 나포에 투입되기로 되어 있던 고속정들은 일제히 미카사로 돌진하고, [[연막탄]]을 살포하여 적의 공격을 차단했다. 일본 해군 수병들은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UDT 대원들에게 패배하고, 미카사는 그대로 국군에게 나포되어 아군을 공격하다가 제주도로 끌려간다. 기함이 나포당하자 쩔쩔매던 연합함대는 그대로 한국 해군의 공격에 노출당했다. [[Mk.46 경어뢰]]와 [[엑조세]], [[하푼]], 76mm 컴팩트포가 일제히 일본군을 공격했고 연합함대는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날아오는 공격에 저항다운 저항도 하지 못하고 단 3여0분 만에 궤멸당한다. 납치당한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을 대신하여 함대를 지휘한 가미무라 중장은 간신히 후퇴하고 전력을 점검해 보니 출항할 때의 20%만 남아 있었으며, 성한 함정은 하나도 없었다. 그때 매복해 있던 [[장보고급 잠수함]] 5척이 후퇴하는 연합함대를 공격하고, 가미무라와 참모진들은 도망치지도 못한다는 걸 깨달으며 모두 자결했다. 그와 함께 임시기함을 맡았던 [[이즈모급 장갑순양함]] 이즈모도 바다에 가라앉았다. 연합함대는 단 1척을 제외하면 모두 전멸당하는 처참한 패배를 겪었다. 한편 도일균 대장은 포로가 된 도고 제독에게 한국과 일본 사이의 교섭을 중재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도고 제독은 완강하게 거부했다. 대참패를 겪은 일본 제국 정부는 주전파를 대표하는 [[노기 마레스케]] 육군 대장과 강화파를 대표하는 [[이토 히로부미]]로 나뉘어 대립했다. 그러나 메이지 천황은 전의가 꺾이기는 커녕 흑우를 직접 맞아보이겠다며 전쟁을 결의한다. 하지만 [[고토쿠 슈스이]]가 운영하는 [[마이니치 신문]]을 비롯해 [[사회주의]] 성향의 신문들이 천황 체제 전복을 위해 한국에서 뿌린 [[삐라]]를 근거로 [[언론통제]]를 뚫고 연합함대의 패전 소식을 전했으며 일본 전역에서는 노동자들이 봉기하기 시작한다. 한편 한국을 탈출한 이테를 비롯한 외국인 일행은 한국 정부의 마수로부터 어린 [[마오쩌둥]]을 보호하려고 했고, 중간에 [[황비홍]]을 만나 한국 국정원 요원들의 추격을 뿌리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과거 덕수궁을 경비했던 무사 박형국을 파견했고, 일행 중 한 명이던 사티아가 배신하면서 [[싱가포르]]에서 국정원 요원들에게 위치가 발각당하고 롭은 항전하다가 국정원 요원들에게 죽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